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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관 형제가 2010년 8월 8일 2부 주일예배에서 확신의 삶 간증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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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LIT MissionTrip

2010/08/06 00:39 /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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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6 00:39 2010/08/0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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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녀님이 쓴 죽음과 마주하는 법이라는 에세이를 읽었습니다.
우리도 매일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상하게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어느 누구도 듣고 싶지 않은 단어일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대전제와 또 언제 죽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 앞에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종종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죽음을 통해 이 세상의 것들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또 얼마나 한시적인 것인지 돌아 봅니다. 별것 아닌 것으로 서로 미워하고, 잠깐 양보해도 뭐 대단한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닌데, 그러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지 돌아봅니다.
매일 매일 바쁜 일상에 쫓겨 하나님의 나라에 내 마음 두기가 쉽지 않을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나의 바쁜 일과는 매일 계속됩니다. 지치고 힘들때, 좀 많이~ 짜증날때 죽음을 생각합니다. 그래 내가 언제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 갈지 누구도 모르는데, 오늘도 기쁜 얼굴로, 가장 밝은 모습으로 우리 사랑하는 가족을 이웃들을 대하자. 
언제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 갈지 모르는데 내 마지막 모습이 환하게 웃는 그리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은 모습이였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꿔봅니다.
.
바라기는 그러면 이 땅에서 나의 매일 매일이 조금씩 조금씩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
아래는 김스텔라 수녀님의 에세이 "즉음과 마주하는 법" 내용입니다.
김스텔라 서울
모현가정호스피스 수녀

어린 손자들은 할머니 손과 발을 어른들은 얼굴과 몸을 닦았다
할머니와 관계를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이 같은 사랑의 행위처럼 아름답고 숭고한 게 또 있을까
우리는 죽음과 마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단지 시간이 달라서 아직 먼 것처럼 느끼지만…

그 할머니를 만난 것은, 통증이 너무 심하자 할머니의 아들이 다급한 마음에 가정호스피스를 찾아 우리에게 연락했기 때문이다. 통상 서너달 진단을 받은 말기암 환자들에게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간호를 하는 게 가정호스피스 역할이다.


할머니는 머리가 아프다며 하얀 천으로 머리를 꽁꽁 싸매고 발가락 사이사이에도 동여매고 있었다.


“할머니, 머리는 왜 그러고 계셔요?”


“머리를 꽁꽁 묶어 놓으면 머리가 안 아프거든.”


할 머니는 암 말기로 더 이상 병원에서 해 줄 게 없다고 해 집에서 요양하고 있었다. 중환자실에 가서 치렁치렁 고무호스와 줄을 매달고 있느니 집에서 조용히 임종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통증 때문에 너무 고통을 겪어 아프지 않고 죽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다. 할머니께 진통제를 드리자 통증은 조절되기 시작했고, 구역질과 구토 문제도 해결돼 식사도 제대로 하게 됐다. 그렇다고 죽음의 두려움이 해결된 건 아니었다. 집안에 혼자 계셔야 할 때가 많아 오히려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하루는 밤늦게 통증이 심하다고 해 집으로 방문하자, 할머니는 “사람도 아녀”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 무슨 뜻이냐고 되물었다. 할머니는 갑자기 목소리가 살아나더니 “당신은 사람이 아니라 천사와 같다”고 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할머니의 이런 말씀을 듣는 순간, ‘아! 이게 바로 우리 삶이구나’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할머니는 아프고 힘들 때 누군가가 늘 함께 있어 주기를 원했던 거였다. 신체적인 통증만 아니라 정신적 통증을 더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늦은 시간에도 집으로 급하게 달려오는 우리를 보고 할머니는 편안해했다. 환자를 돌보는 것은 우리의 시간에 맞춰야 하는 게 아니라 환자의 시간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그렇게 4개월여를 보낸 뒤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자녀들뿐만 아니라 손자들도 모여 있었다. “지금 할머니는 여행을 떠나실 준비를 하고 계시니 손자들도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의 권유에 아이들이 한명씩 할머니에게 다가가 “이젠 아프지 마세요. 좋은 곳에 가서 편히 사세요”라고 인사를 하자, 말할 힘조차 없는 할머니는 눈짓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 얼굴은 금세 평안해졌고 가족들도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할머니에게 새 옷을 입히기 위해선 목욕을 시켜드리시죠”고 하자, 어린 손자들은 할머니의 손과 발을 씻겼고, 어른들은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여윈 몸을 닦았다. 할머니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세상을 떠나려는 사람과 이 같은 사랑의 행위처럼 숭고하고 아름다운 게 또 있을까. 할머니는 비록 한마디도 못하고 숨 쉴 힘조차 없는 상황이 됐지만 얼굴 표정으로, 눈 한번 맞추는 것으로 가족들의 사랑을 확인하였다. 온 가족이 모여서 할머니와 지낸 옛날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할머니의 장례식과 유언에 대해 말했다. 자기의 유언대로 가족들이 해 줄지 염려하는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그런 얘기를 하면 환자들은 되레 차분해지면서 위로를 받는다. 할머니는 그날 자신의 소원대로 온 가족이 둘러앉은 가운데 어둠을 잘 헤치시고 빛을 향해 웃으며 가시지 않았을까.

나는 이 가정을 보면서 우리는 죽음과 마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집에서 돌아가시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병원에서 임종해 죽음을 접할 기회가 적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임종을 지키게 할 것이냐를 놓고 물어보면 대부분 가정들은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어른들은 자녀들이 받게 될 상실감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방암 말기인 38살 엄마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친척들은 “아이들에게 아픈 엄마의 나쁜 기억을 보여주는 게 좋지 않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은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런 만큼 엄마가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설득했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마지막 인사를 하도록 했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 제일 큰 녀석이 엄마에게 “이젠 아프지 말라”고 말하면서 엄마 품에 한참 동안 안겼고, 자기 한 몸 가누기조차 힘든 엄마도 그렇게 아이를 안았다. 둘째도 엄마에게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를 했고 6살짜리 막내가 “엄마 잘 가”라며 아픈 엄마 손을 꼭 잡았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소리없이 눈물을 떨어뜨렸다. 어린 자녀 셋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엄마는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아이들을 보며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였다. 그렇게 가족과 인사를 한 아이 엄마는 그날 밤 숨을 거뒀다.


장례를 치른 뒤 아이들의 아빠가 나를 찾아왔다. “아이들이 엄마의 죽음을 못 봤다면 아마 엄마 이야기는 우리 집에선 말도 꺼내지 못했을 거예요. 온 가족들이 모두 그런 어려움을 함께 겪었기 때문에 지금은 서로 엄마의 빈 공간을 채우려고 노력해요. 아이들이 나보고도 오히려 힘내라고 하니….”


어른들의 염려와 다르게 어린 아이들은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통해 죽음이 아주 캄캄하고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아이들에겐 죽음을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여기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생각한다면, 죽음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로 남지 않을 것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단지 시간이 달라서 마치 나에게는 아직도 먼 것처럼 느끼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태아가 열달 동안 엄마 뱃속에서 엄마와 함께 살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과 같다. 우리는 죽어서 가는 그곳이 어디인지 모르기에 마치 태어나는 것처럼 그렇게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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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4 16:36 2010/08/0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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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혜 자매가 2010년 7월 18일 2부 주일예배에서 확신의 삶 간증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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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9 11:25 2010/07/1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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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경종 2010/07/20 10:39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thank you!!

행복

2010/06/30 11:32 / 사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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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행복해 보이는 사진입니다. 언뜻 보기에도 별로 가진 것 없어 보이고, 우리 60년대 농촌 사진 같아 보이는데, 월드비젼에서 도와주고 있는 베트남의 한 가난한 농촌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한명 한명 얼굴을 가까이 바라 봅니다. 순박하고 자연스런 미소가 마음을 따뜻하게 하네요.


아래는 조선일보 원래 기사 내용입니다.

올해로 60주년을 맞는 6·25는 한국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역설적으로 또 하나의 나눔의 역사를 만들었다. 미국인 밥 피어스 목사는 한국전쟁 폐허 속에 굶주리던 아이들을 위해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와 모자원 사업을 시작했고, 그해 9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구호단체 '월드비전'을 세웠다. 월드비전의 첫 수혜국은 한국이었지만, 한국인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월드비전 한국'은 현재 전 세계 44개 국가의 어린이와 마을을 도우며 월드비전 안에서 네 번째로 큰 후원국으로 성장했다.외국인의 도움을 받던 '월드비전 한국'이 외국을 돕기 시작한 것은 1991년. 40년 도움받던 역사에서 이제 20년 도움 주는 역사를 쓰고 있다. 월드비전 관계자는 "파란 눈의 외국인 후원자의 도움으로 성장한 아이가 이제 성인이 되어 다른 나라의 어린이를 돕는 후원자가 됐다"면서, "코리아가 어디 있는 나라인지 모르는 이들이 과거에 우리를 도왔다. 이젠 코리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월드비전 한국이 지원하는 베트남 산악지대인 트라미 사업장은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꼽힌다. 1997년 문을 연 트라미 사업장은 지난 12년 동안 보건, 농업, 교육, 역량강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트라미 사업장은 철저히 주민들 스스로 주민들을 위해 움직이는 곳이다.
트라지앙 마을에서 열린 주민 욕구 조사회의의 한 장면. 어떻게 하면 가축을 잘 키울 수 있을지 의견을 수렴해서 서로 공유하는 자리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물소 사육의 장점에 대해 "새끼를 잘 낳는다" "숲에서 풀을 뜯어 먹으니 키우는 데 돈이 안 든다"며 장점을 나열하면서도 "물소는 구입비용이 너무 비싸다"며 단점도 얘기했다. 회의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서로 안부를 묻고 떠드는 모습은 마치 잔칫집 같다. 트라미 사업장의 모든 사업은 월드비전 직원들이 조언하지만, 주민들의 머리에서 시작해 주민들의 손과 발을 통해 시행된다. 월드비전 측은 "얼굴도 모르는 한국 고교생의 용돈이, 주부의 쌈짓돈이 소로 변하는 조용한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 사업도 중요한 분야 중 하나다. 이른바 '영양 클럽'은 2004년 처음 생겨 그 해에 약 160명의 엄마에게 영양식 조리법과 자녀 양육법을 가르쳤다. 아이 키우는 것이야 어느 나라나 똑같지만, 얼마나 위생적으로 건강하게 키우느냐의 문제는 교육과 지원이 필요하다. 2006년부터는 아동케어센터를 만들어, 5세 미만의 아이들에게 영양식과 탁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트라미 사업장에는 현재 33개의 영양클럽이 있고, 클럽마다 15명에서 30명의 엄마가 모인다. 구엔 티 레(22)씨는 "전에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뜨거운 밭에 데려갔다. 비도 자주 맞다 보니 쉽게 아팠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케어센터에 아이를 맡길 수 있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티 투이(20)씨의 2살 된 아이는 영양실조 판정을 받았지만, 케어센터에서 비타민을 먹이고, 영양식으로 음식을 해준 덕에 이제는 정상체중으로 돌아왔다.


월드비전 관계자는 "트라미 사업장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잘사는 방법과 정신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우리가 60~70년대 가난을 극복했던 것도 단순한 구호나 지원이 아니라 잘살아보겠다는 의지 때문 아니었느냐"고 말했다. (월드비전 후원 문의: 02-2078-7000 www.worldvis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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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30 11:32 2010/06/30 11:32
목자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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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

2010/06/01 16:56 / 일상
전쟁의 이야기가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이때 한장의 사진이 제 눈을 사로잡습니다. 아마 아프카니스탄 같아 보이는 곳에 한 병사가 그곳 아이와 하이화이브를 하는 사진인데.
한번 이 사진속 병사의 군복과 총을 빼고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냥 천진난만한 한 아이, 그리고 한없이 자상해 보이는 친절한 아저씨, 눈 높이를 맞춰주려고 한 무릎을 꿃고 아이와 놀아주는 아저씨의 모습이 너무나 평화로와만 보입니다.
때로는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리지요. 눈을 감고 한번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내 눈을 감고, 이제 하나님의 한 없는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이웃을 한번 다시 돌아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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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1 16:56 2010/06/01 16:56
목자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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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ment RSS : http://ydkc.org/mongolia/rss/comment/182
  2. stigma 2010/06/01 22:07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목자님의 글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인적이 드문 이곳에 글을 꾸준히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3. 이경종 2010/06/02 08:32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오랜만이네, 잘지내고 있는지?
    어떻게 교회는 잘 정해서 다니고 있겠지? 종종 소식 전해 주세요.

집시의 기도---- 장금

2010/05/29 13:20 / 일상
집시의 기도

- 충정로 사랑방에서 한동안 기거했던 어느 노숙인의 시
둥 지를 잃은 집시에게는
찾아오는 밤이 두렵다.
타인이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도
집시에게는 두려움의 그림자일 뿐……

한 때는 천방지축으로 일에 미쳐
하루해가 아쉬웠는데
모든 것 잃어버리고
사랑이란 이름의 띠로 매였던
피붙이들은 이산의 파편이 되어
가슴 저미는 회한을 안긴다.

굶어죽어도 얻어먹는 한술 밥은
결코 사양하겠노라 이를 깨물던
그 오기도 일곱 끼니의 굶주림 앞에
무너지고

무료급식소 대열에 서서……
행여 아는 이 조우할까 조바심하며
날짜 지난 신문지로 얼굴 숨기며
아려오는 가슴을 안고 숟가락 들고
목이 메는 아픔으로 한 끼니를 만난다.

그 많던 술친구도
그렇게도 갈 곳이 많았던 만남들도
인생을 강등당한 나에게
이제는 아무도 없다.

밤이 두려운 것은 어린아이만이 아니다.
50평생의 끝자리에서
잠자리를 걱정하며
석촌공원 긴 의자에 맥없이 앉으니
만감의 상념이 눈앞에서 춤을 춘다.
뒤엉킨 실타래처럼
난마의 세월들……

깡소주를 벗 삼아 물마시듯 벌컥대고
수치심 잃어버린 육신을
아무데나 눕힌다.
빨랫줄 서너 발 철물점에 사서
청계산 소나무에 걸고
비겁의 생을 마감하자니
눈물을 찍어내는 지어미와
두 아이가 "안 돼, 아빠! 안 돼"한다.

그 래,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교만도 없고, 자랑도 없고
그저 주어진 생을 걸어가야지.
내달리다 넘어지지 말고
편 하다고 주저앉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날의 아름다움을 위해

걸어가야지……
걸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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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9 13:20 2010/05/29 13:20
목자 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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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신문기사에서 참 따뜻한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어느 한 판사의 아름다운 판결내용입니다.  마음에 지울수 없는 큰 상처로 빗나간 길을 걸어가던 한 소녀가 이제 또 다른 잘못으로 법정에서 서서 무거운 처분을 기다리고 있을때 그의 잘 잘못을 따져 형식적으로 처벌하기 보다는 그녀의 아픈 상처를 이해해주고 다시 한번 자신의 자존감을 새울 수 있도록 힘을주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아직 참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이분이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모습이였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내가 이런 모습이였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을 하며 살아가느냐는 다들 다를 것입니다. 수없이 다른 직업과 일들 그러나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있던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한 모습일 것 같습니다.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가는 사람들.  세상늬 논리와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 분명한 삶의 목적을 깨닫아 실천하는 사람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내 일터에서, 가정에서 참 그리스도인인가 한번 돌이켜 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로마서 12:2 (표준새번역)


  ---기사 내용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렴."
지난달 초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소년법정. 서울 도심에서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 등을 훔쳐 달아난 혐의로 피고인석에 앉은 A양(16)에게 서울가정법원 김귀옥(47) 부장판사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거운 보호 처분을 예상하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던 A양이 쭈뼛쭈뼛 일어나자 김 부장판사가 다시 말했다. "자, 날 따라서 힘차게 외쳐 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예상치 못한 재판장의 요구에 잠시 머뭇거리던 A양이 나직하게 "나는 세상에서…"라며 입을 뗐다.
김 부장판사는 "내 말을 크게 따라 하라"고 했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큰 목소리로 따라 하던 A양은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고 외칠 때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법정에 있던 A양 어머니도 함께 울었고, 재판 진행을 돕던 참여관·실무관·법정 경위의 눈시울도 빨개졌다.
A양은 작년 가을부터 14건의 절도·폭행을 저질러 이미 한 차례 소년 법정에 섰던 전력이 있었다.
법대로 한다면 '소년보호시설 감호위탁' 같은 무거운 보호 처분을 받을 수 있는 상황. 그러나 김 부장판사는 이날 A양에게 아무 처분도 내리지 않는 불(不)처분 결정을 내렸다. 그가 내린 처분은 '법정에서 일어나 외치기'뿐이었다.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린 건 A양이 범행에 빠져든 사정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A양은 간호사를 꿈꾸던 발랄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작년 초 남학생 여러명에게 끌려가 집단폭행을 당하면서 삶이 바뀌었다. A양은 당시 후유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고,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신체 일부가 마비되기까지 했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A양은 학교에서 겉돌았고, 비행 청소년과 어울리면서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말했다.
"이 아이는 가해자로 재판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삶이 망가진 것을 알면 누가 가해자라고 쉽사리 말하겠어요? 아이의 잘못이 있다면 자존감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존감을 찾게 하는 처분을 내려야지요."
눈시울이 붉어진 김 부장판사는 눈물범벅이 된 A양을 법대(法臺) 앞으로 불러세웠다.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중요할까. 그건 바로 너야. 그 사실만 잊지 않으면 돼. 그러면 지금처럼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그러고는 두 손을 쭉 뻗어 A양의 손을 꽉 잡았다. "마음 같아선 꼭 안아주고 싶은데, 우리 사이를 법대가 가로막고 있어 이 정도밖에 못 해주겠구나."
이 재판은 비공개로 열렸지만 서울가정법원 내에서 화제가 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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